문학과 음식

평양냉면, 미역국, 삶은 감자와 <소금> (강경애)

검하객 2018. 5. 31. 09:19

 

  구조나 인물, 배경을 통해 문학을 읽을 수도 있고, 음식과 여행과 의상으로 문학에 접근할 수 있다. 이념이니 세게관이니 하는 어려운 관념에서 조금 벗어나, 일상의 한 요소로 문학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때가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다. 문학은 언어로 구성된 일종의 풍속화이다. 강경애의 <소금>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아래 글은 최창륵과 풍열이 공동으로 발표한 <일제 강점기 한·중 이주민의 ‘만주’ 체험과 근대적 각성 ― 강경애 「소금」과 뤄빈지 『국경선에서』의 비교문학적 고찰> (대동문화 101, 2018)에서 가져온 것이다. 대개 음식은 예술작품의 분위기를 만드는 미적 요소로 작용하는데, <소금>에서의 그것은 참담함을 극대화시키는 '참담미'의 역할을 한다. 이 작품의 평양냉면은 최근 남북정상회담에서 화제가 되었던 평양냉면과 똑같은 음식이지만, 그 의미와 기능은 사뭇 다르다. 미역국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고, 삶은 감자 또한 내 삶에서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 이 글이 즐거운 여행의 의미있는 출발이 되기를!

 

실제로 소금에서 주인공은 이름조차 없이 봉식이 어머니에서 봉염이 어머니로 유동하며, 그만큼 사회적 주체로서의 위치는 불안하다. 하여 주인공이 개체로서의 자각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매개물이 필요했으며, 작가는 을 매개물로 설정한다. 봉식이 어머니는 오로지 배고픔을 느낄 때 개체로서의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게 되는데, 소금이부 족하여 남편에게 국조차 맛있게 끓여 내놓지 못하는 자신을 애달파하는가 하면, 봉희를 임신하여서는 간절히 냉면이 먹고 싶어진다. 유산을 하려고 양잿물을 먹으려는 그 순간까지도 냉면은 먹고 싶었다. 누가 곁에다 감추고서 주지 않는 건만 같았다. 그렇게 먹고 싶은 냉면을 못 먹어보고 죽는다는 것은 너무나 애달픈 일이다.” 최현희는 봉염모는 오직 냉면을 먹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냉면이 봉염모라는 인간을 대상화하여 스스로 주체의 자리를 차지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라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몸의 욕구가 아닌 관념만이 주체여야 한다는 법은 없으며, 먹고 싶다는 생의 본능이 곧 삶의 의지로 전환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인 집 헛간에서 봉희를 해산하게 되었을 때도 봉식이 어머니는 따끈한 미역국을 그리워하며, 살기로 작심하고 파뿌리를 뽑아 씹는다. 다시 봉염과 봉희를 잃고 난 뒤에는 감자 삶은 내를 맡고 허기를 느끼게 되면서 무엇을 먹구 살겠다는 자신이 기막히게 가련해보인다. 그러나 본능적 허기를 통해 자신의 가련함을 깨닫는 것은 역으로 스스로 인간임을 자각하는 과정이다. 또한, 그 어떤 비운 앞에서도 먹어야 함을 깨달을 때, 그 가장 동물적인 밑바닥에서 인간은 비로소 다시금 삶의 의미를 되묻게 되는 법이다.

'문학과 음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산도의 음식들  (0) 2018.05.31
讀剪燈 7, 강가 객점의 소녀  (0) 2018.04.08
제주도 좁쌀 청주  (0) 2017.06.25
양하(蘘荷)  (0) 2015.10.01
음식과 영혼  (0) 2015.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