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공철(1760~1840), 金陵集 권 17, 朴山如墓誌銘 (1758~1787)
내가 일찍이 연암 선생을 따라 놀다가 벽오동정관에서 산여(山如)를 만났다. 이덕무와 박제가도 함께 있었다. 때는 밤이라 달이 밝은데 연암은 말을 늘여 열하일기를 읽었다. 이덕무와 박제가는 둘러 앉아 들었다. 산여가 연암에게 말했다. “선생의 문장은 교묘하고 좋지만 패관기서(稗官奇書)일 뿐입니다. 이로부터 고문(古文)이 일어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연암은 취해서 “네가 무얼 알겠느냐?” 하고는 다시 이어 읽었다. 산여도 취해 자리 옆의 촛불을 들어 그 원고를 태우려고 하여 내가 급히 제지했다. 연암은 노해 몸을 돌이켜 눕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때 이덕무는 거미 그림 한 폭을 그리고, 박제가는 병풍에 초서로 음중팔선가를 쓰니 종이가 금방 동났다. 내가 서화의 절묘함을 칭찬하며, 선생께서 발문을 지으면 삼절(三絶)이 되겠다고 하며 그 마음을 풀어드리려고 했지만, 연암은 더욱 노하여 일어나지 않았다. 날이 밝으니 연암은 벌써 깨었다. 문득 의관을 갖추고 똑바로 앉아 말했다. “산여야, 이리 오너라. 내가 세상에서 궁한 지 오래라, 문장을 빌려 가슴속 가득한 불평한 기운을 쏟아내며 마음껏 놀았을 뿐이다. 어찌 좋아서 한 일이겠느냐? 산여와 원평(元平, 남공철)은 젊고 자질이 아름다우니 문장을 지음에 나를 배우지 말고 정학(正學) 진흥을 임무로 삼아 뒷날 왕조의 훌륭한 신하가 되거라. 내가 그대들을 위해 벌을 받겠노라.” 술잔을 들어 다시 마시고는 이덕무와 박제가에게 권하였다. 끝내는 크게 위해 환호하였다. 남공철(1760~1840), 金陵集 권 17, 朴山如墓誌銘 (1758~1787)
余嘗從燕巖朴美仲, 會山如碧梧桐亭館, 靑莊李懋官,貞蕤朴次修皆在. 時夜月明, 燕巖曼聲讀其所自著熱河記. 懋官次修環坐聽之. 山如謂燕巖曰, 先生文章雖工好, 稗官奇書, 恐自此古文不興. 燕巖醉曰, 汝何知. 復讀如故. 山如時亦醉, 欲執座傍燭焚其藁. 余急挽而止. 燕巖怒, 遂回身臥不起. 於是懋官畵蜘蛛一幅, 次修就屛風草書, 作飮中八仙歌, 紙立盡. 余稱書畵極玅, 燕巖宜有一跋爲三絶, 欲以解其意, 而燕巖愈怒愈不起. 天且曙, 燕巖旣醒. 忽整衣跪坐曰, 山如來前, 吾窮於世久矣, 欲借文章, 一瀉出傀儡不平之氣, 恣其游戲爾. 豈樂爲哉. 山如元平, 俱少年美姿質, 爲文愼勿學吾, 以興起正學爲己任, 爲他日王朝黼黻之臣也. 吾當爲諸君受罰. 引一酌復飮, 又勸懋官次修飮, 遂大醉懽呼.
'시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 黃蓉과 讀 朱子柳의 문답, 古今笑 (0) | 2012.10.11 |
|---|---|
| 자화상 (김명국) (0) | 2012.10.11 |
| 비몽사몽간에 글귀를 다듬다 (0) | 2012.09.17 |
| 臨江仙 - 楊愼 (0) | 2012.08.28 |
| 虞美人聽雨, 또는 一江春水 (蔣捷) (0) | 2012.08.28 |